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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타스 사람들
‘큰 딸,내 새끼 이 OO’ 드림


글 김소영 헬레나|카리타스달서구보금자리

명절 때 고향을 찾아 떠나는 여행 손님을 귀성객(歸省客, homecoming people)이라 하지요. 가족과 떨어져 살기는 하나 요즘은 교통수단이 다양해지면서 이동 시간이 짧아지고 편리해져 만나는 횟수가 늘고 화상이나 SNS 등을 통해 소통하니 가족 간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간격도 좁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우리 보금자리 공동체 식구들의 명절 맞이는 조금 특별했습니다.

카리타스달서구보금자리는 ‘세상 속으로’의 당당한 자립생활의 꿈을 가진 성인기 발달장애인 분들이 세상과 이웃들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성인이 되어 그동안 자라 온 집과 부모님 품을 떠나 이곳에서의 출발은 낯설음의 연속이지만 또 다른 일 배움과 새로움으로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 년 중 명절 때 우리 보금자리 식구들은 가족을 만나러 떠나는 귀성객이 됩니다. 이곳 대구에서 멀 게는 삼척, 성남, 함양, 밀양, 진주 등에 있는 원가정을 향해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생활재활교사들은 한 달 전부터 당사자들과 함께 이동 수단을 결정해 예매하고, 출발에서부터 원가정 도착 확인까지 007 수준에 가까운 긴밀한 작전을 펼칩니다. 이전까지 원가정 명절 선물은 이들이 가지고 이동하기 수월한 품목에 초점을 맞추어 시설 차원에서 일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올 추석부터는 발달장애인 분들이 받은 월급으로 직접 가족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으로 바꿔 보았습니다. 아직은 초보 훈련생 정도이기에 훈련수당으로 받는 월급이 10만 원, 20만 원, 30여만 원 정도인 분들이 대다수이지만 그렇게 스스로 차곡차곡 모은 월급으로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생각해 결정하고, 고른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얼굴에 기쁨이 보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짧은 시간에 손가락 클릭과 온라인 주문으로 끝낼 수 있는 단순한 일이지만 생활재활교사들과 당사자들에게는 거의 두어 달 가량의 시간과 땀이 깃든 대장정이었습니다. 선물을 구매하기까지 생각과 의견이 수시로 바뀌고 구매를 하고도 환불과 재구매 과정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마음이 그저 단순 변심이 아니라 그 선물을 받을 가족을 떠올리며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수고의 과정에 기쁘게 함께합니다.

“홍OO 씨, 이번 추석에 부모님께 어떤 선물을 드리고 싶으세요?”, “네, 선생님. 저는 산수화가 그려진 큰 병풍을 사 가겠습니다.”라고 아주 정중하게 대답합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병풍을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네, 저희 집안이 예로부터 뼈대가 있는 집안이라서요. 추석에는 병풍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병풍을 좋아하시는데 산수화 같은 멋진 그림이 그려진 병풍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있는 것은 한자가 많이 있어서요.”라고 대답합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선물을 제안하는 모습에 교사들이 놀라기도 합니다. 난시로 어려움이 있지만 보석 십자수 펜만 들면 초고도의 집 중력을 발휘하는 장OO 씨는 엄마가 좋아하는 예수님 그림의 판화를 선택해 한 달여 만에 거뜬히 완성하고는 사무실 달력의 9월 27일에 큰 동그라미를 그리고 '밀양’이라고 크게 적어 놓습니다. 음식 가림이 특별히 심해 견과류를 아예 먹지도 않는 김OO 씨는 대형 마트의 다양한 상품 가운데 동생이 좋아하는 견과류선물세트의 사진을 보고 찾아옵니다. 그리고 미리 구입한 선물세트를 집에 가기 전 2주 동안 매일 손에 꼭 쥐고 출퇴근을 함께한 후에야 집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특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온 보금자리의 제일 막둥이이자 애교가 많은 이OO 씨는 엄마, 아빠가 신으시면 참 예쁘겠다며 본인의 취향대로 알록달록한 양말세트를 고르고 꾹꾹 눌러 쓴 카드를 겉포장에 붙입니다. 자라면서 불려졌던 마음속의 이름 그대로 ‘큰딸, 내 새끼, 이OO’ 드림.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이들의 마음속에 엄마의 이름으로, 아빠의 이름으로, 동생의 이름으로 사랑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지적장애 또는 자폐 스펙트럼을 통해 보는 세상의 빛깔은 이들에게는 다소 그 색깔의 느낌에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그분이 만들어 놓으신 하나의 사랑은 그들이 세상을 향해 내딛는 당당한 한 걸음 한 걸음이 되어 주시기에 오늘도 힘차게 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