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동(動)하다
기다림


글 김관호 리카르도 신부|영천성당 보좌

‘기다림’이라는 감정과 일을 생각하면 이 년 전에 만난 선생님과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선생님께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의 시간은 깊었다. 하지만 깊어진 시간과는 달리 생각보다 선생님과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선생님과 약속을 잡고 이십 년 전 기억 속에 있는 선생님의 모습을 그려봤다. 약속 날짜를 기다리는 것이 참 쉽지 않았다.

 

‘약속이 취소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해졌다. 걱정 속에 하루가 쌓이고 쌓여 약속한 날이 되었다. 미사에 참례하겠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미사를 집전했다. 여기저기 찾아봐도 선생님이 보이지 않아 당황했지만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 하면서 반갑게 인사해 주시는 선생님을 만났다. 이십 년 전 그 기억 속에 있는 선생님이었다.

 

이 기다림이 사실이 되었다. 선생님과 나의 지난 시간이 각자의 기억에서 함께 나누는 이야기가 되었다. 짧은 만남의 시간이 지나갔다. 선생님을 보내 드린 후 되돌아오는 길, ‘기다림이라는 감정과 일 속에서 우리는 매일매일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매일의 순간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반드시 해야 해서 미루고 싶은, 설렘을 느낄 수 없는 일에도 기다림은 있다. 어떻게든 마주해야 하고 바라봐야 하기에 이 시간이 버겁게 느껴진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그 감정을 느껴내는 이 기다림의 시간을 우리는 살아간다.

 

또한 정말 원하고 바라는 것에 대한 기다림도 우리 삶 속에 함께한다. 이 기다림이 있기에 우리는 미루고 싶고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마주하기 전의 기다림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다.

 

이 기다림이 연속되는 가운데 우리가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은 것들과 우리의 현실이 일치하지 않을 때 다시 말해 그렇게까지 두려워하거나 피하고 싶은 것이 아님을 느낄 때 기다림의 모습은 달라지게 된다.

 

매월 중순 때마다 울리는 원고 마감일을 알려주는 편집부의 문자가 기다려질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생각보다 글이 잘 쓰이거나 나에게 온기를 전해 준 많은 분들에게 온기를 전달하고 싶을 때는 언제쯤 문자가 오려나 싶었다.

 

정말로 글이 안 쓰여지거나 부끄러운 일만 가득했던 그날에는 문자가 오는 것이 두려워 이번 달만 넘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 년이라는 기다림의 연속과 흔들림의 기록을 마무리한다. 이 기다림과 흔들림의 연속 가운데에서 분명한 것은 나는 많이 좋아졌고, 느리지만 천천히 내 방과 동굴에서 조금씩 걸어 나오고 있다. 물론 흔들림은 계속되겠지만 이 흔들림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며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갈 나를 기다리려고 한다.

 

* 그간 부족한 글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기다려 주신 많은 분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동하는 그 순간을 통해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하다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과 연재를 맡아 주신 김관호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