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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에서 온 편지
나의 작은 꿈②(我的小夢想,워더시아오멍시앙)


글 강우중 베르나르도 신부|타이중교구 선교사목

 

초등학생 때 일입니다. 어느 날 수업 중 장래희망에 관해 간단히 발표할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환경미화원이 되겠다는 꿈을 말했습니다. 이유는 환경미화원과 같이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세상을 밝게 비춰주는 삶이 오히려 의미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선생님의 설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마도 어린 저의 마음에 울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제 두 손에는 자그마한 쓰레기 주머니가 여러 개 쥐어져 있었습니다. 당시 학교에는 자신이 만든 쓰레기를 되가져가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몇몇 친구를 위해 쓰레기를 버려주게 되었고, 집으로 가지고 온 쓰레기 주머니를 마당에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이를 발견한 어머니는 쓰레기를 뒤져 제가 버린 것을 알았고, 수업 중 발표한 내용 또한 알게 되어 크게 실망했습니다. 환경미화원이라는 장래희망은 어린아이의 철없는 행동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한국은 그로부터 몇 년 후 IMF와 취업난으로 많은 사람들이 환경미화원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현실이 주는 삶의 변수로 꺼리던 일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과연 어떤 힘이 작용할까요? 저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꿈꾸는 미래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알 수 없지만 마음속에 누군가를 지켜주고 돌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비록 꿈과는 다를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진정 꿈이란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이를 영상으로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우선 촬영을 위한 대략적인 구성을 정리해 각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언어적인 문제는 몇몇 교우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뒤 본격적인 촬영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배역은 주일학교 아이들과 부모들이 교리교사의 인도로 역할을 맡아 대본 연습을 하도록 맡겼습니다. 처음에는 한 배역에 아이들이 몰려 싸우지 않을까 등 걱정이 많던 교리교사들도 자신의 역할을 찾아 할 일들을 해 나갔고, 우리는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걱정과는 다르게 모두 열심히 연습에 임했고, 특히 부모들의 열성적인 참여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촬영 일정 동안 날씨가 궂었습니다. 거의 대부분 비가 새고 허름한 본당 건물 안에서 촬영이 이어져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날씨가 좋았던 날에 최대한 촬영을 마무리했습니다. 촬영과 녹음, 밤샘 편집 등 영상을 완성하는데 2주 정도 걸렸습니다.

지역행사 당일 우리 본당은 다른 본당과는 다른 색다른 시도를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 시도가 어떤 반응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영상을 공개한 날,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교우들은 설정해 둔 포인트에서 웃음을 터트렸고, 메시지에 담긴 뜻에는 진지해졌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많은 분들의 박수가 이어졌고 출연진들은 감사의 뜻을 담아 정중히 인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본당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타이중교구가 주관하는 영상 공모전에 본 영상을 출품해 최종 2위와 최고 인기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처음에는 무모한 도전이 되지 않을까 우려도 했지만 교우들이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모습에서 위로와 희망을 가진 것이 이번 경험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이들은 “다음 영상은 언제 또 만들어요?”라고 자꾸 물으며 저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꿈을 꾸고 계신가요?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주변을 사랑하고 지켜 주고 계신가요?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우리가 꿈꾸고 있는 한 미래는 절망보다 위로와 희망의 큰 선물로 다가올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마냥 힘겨워도 위로와 희망이라는 큰 선물이 온 세상을 향기로 가득차게 만들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의 오늘이 내일의 향기가 되기를 바라며 저는 이제 그만 자판에서 손을 떼고 남아있는 선교 생활을 계속 살아가고자 합니다.

못난 글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 주심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제작한 영상을 여러분과 나누며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평안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大家平安, 再見 : 따지아 핑안, 짜이찌엔!)

* 그동안 타이완에서 온 편지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과 연재를 맡아 주신 강우중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