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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 푸른 사람들의 이야기
“흙발로 들어오는 사람은 사귀지 마라.”(니체)


글 황영삼 마태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 교수

 

 

3월이면 신학기가 시작됩니다. 아직 학교 건물 안은 춥습니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새내기들과 어느새 선배가 되어 버린 2학년, 겨울방학 중에 군대를 가 버린 학생들, 반대로 군 제대 후 복학한 학생들, 벌써 4학년이라며 이런저런 걱정거리를 늘어놓는 선배들. 이렇게 여러 가지 마음들을 품은 학교의 봄이 시작되었고 그런 다양한 학생들이 만들어 내는 어색함 또한 학교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지나고 나면 그런 순간들조차도 이쁜 시절이고 소중한 감정들임을 알기에 조용히 지켜보기로 합니다. 저 역시 그때는 나이 많은 어른들의 조언이 잘 들리지 않았으니까요. 오히려 그렇게 그들만의 시간 속에서 고민하고 아파하고 성취하는 시기이기에 더 소중하게 기억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학기에는 늘 어색함이 있습니다. 대학교는 매 학기마다 분위기와 각자의 사정이 바뀌어서 인간관계에 많은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특히 1학년들의 신학기는 더 그렇습니다. 서울, 대전, 울산, 창원, 영덕, 포항, 안동, 영주 등등 전국에서 처음으로 하양이라는 곳에 온 친구들이 기숙사나 자취를 시작하면서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고 교수님들과의 만남, 학과 활동, 동아리 활동, 알바 활동 등을 하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을 혼자 만들어 가야 하니 정말 쉽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몇 주가 지나면 점점 강의실은 시끄러워집니다. 서로 알고 친구가 되어 가는 겁니다. 삼삼오오 무리가 생깁니다. 밥도 같이 먹고, 해가 지면 대학로에서 술도 거하게 마시며 다닐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성격이 너무 조용한 친구들은 그 시기를 놓쳐 핸드폰만 보며 다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도 젊음에는 수많은 기회가 있을 테니 언젠가 그 친구도 소중한 친구와 행복한 대학 생활을 하길 응원하며 수업 시간에 한 번이라도 이름을 더 불러주거나, 우연히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먼저 건네며 조용히 응원합니다.

제가 하는 1학년 수업 시간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사실 이 수업 시간에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또래 친구들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발표한다는 것이 처음이기에 쉽지 않습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그걸 들어주고 응원까지 하는 건 투철한 직업 정신이거나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후자겠죠?

늘 혼자 다니던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의 이야기는 대략 이러했습니다. - 자신은 지금 1학년이지만 늦게 대학교를 왔다. 중학교 때부터 직업군인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도 하고 체력도 키우고 다 준비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마치고 군에 입대하기 위해 신체검사를 하러 갔는데 그때 자신이 색 구별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원하는 군대에 들어가질 못했다. 오직 그 꿈만 보고 살아왔는데 더 이상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 하지만 돈은 벌어야 했고 그래서 용접을 배워 용접공이 되었다. 일한 만큼 벌수 있는 기술직이라 꽤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고 살면 자신은 평생 이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대학이라는 곳을 경험하지 못하면 아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대학에 왔다. -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혼자였던 그 학생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듣고 그 학생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멋진 사람이구나. 나이를 떠나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기대가 되는 사람이다. 정말 축복해 주고 싶은 사람이다.’

무리를 지어 다녀도 외로운 사람이 있고, 좋지 않은 의도로 편을 가르는 사람도 있고,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는 게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라도 충분히 좋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한두 명의 친구만으로도 든든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고, 때로는 그 사람을 견뎌 내야만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게 세상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현실입니다. 학교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도 학교에서 우리 젊은 친구들은 세상을 배웁니다. 세상이 얼마나 다양한지, 우리가 몰랐던 것이 얼마나 많은지 느껴봅니다. 그리고 진정한 친구, 좋은 사람을 찾아내는 방법도 몸으로 익혀가고 있습니다. 부디 이 세상의 외로움을 이겨낼 참된 지혜를 얻길 바라며 조용히 응원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짧은 순간이지만 좋은 길동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