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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인사하기
- 카리타스 실천의 시작


글 도건창 세례자요한 | 카리타스복지교육센터 소장

 “먼저 가지고 계신 쪽지나 수첩에 성함과 세례명을 적어 주십시오. 다음으로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신 물건 가운데 가장 아끼는 보물 1호를 적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오늘 이 자리에 함께 계신 분들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가장 행복하겠다는 말을 한 문장으로 적어 주십시오. 다 적으셨으면, 옆에 앉아 계시는 형제자매님들과 인사를 해주시면 됩니다. 단, 인사를 하실 때에는 상대방의 눈을 5초 이상 바라보면서 인사를 해주시고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자신이 가진 노트에 기록해주시기 바랍니다. 옆에 계시는 형제자매님들과 인사를 나누셨다면 상대방이 지금, 여기에서 가장 듣고 싶었다고 하신 그 말씀을 정성을 다해 그분에게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을 서로에게 해주셨다면 제가 오늘 특강에서 청을 드릴 일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강의를 마쳐도 되겠습니다.”

2015년 교구장님 사목방침이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 ­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매진합시다.”였다. 그 사목방침을 본당에서 구현하는 것을 돕기 위해 우리 교육센터와 대리구 본당사회복지협의회가 함께 관심 있는 본당의 신청을 받아 본당에서 사회복지를 잘 실천하는 방안에 관한 특강을 해오고 있다. 내가 특강을 맡으면 언제나 위에 이야기한 요청으로 시작한다. 왜냐하면 ‘인사하기’는 만남의 시작이고 ‘카리타스’, 곧 교회다운 사랑실천은 만남이라는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인사하기 연습에는 세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첫째, 자기 자신에 관해 먼저 소개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름이나 세례명만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무엇인지를 먼저 열어 보인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의 기대를 서로가 채워주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일상 속에서 이런 방식으로 인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인사는 특강을 위해 고민해서 만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인사방식을 카리타스 일을 하던 선배들로부터 생활 속에서 배웠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독일 프라이부르크로 옮겨 카리타스학을 공부하기 시작할 때 같은 학과에 30년 가까이 가톨릭교회 사회복지를 위해 헌신해 온 남영자 선생님이라는 대선배가 계셨다. 그분 덕택에 여러 독일인 카리타스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공부하던 도시가 작아 거리에서 우연히 그분들을 만날 기회가 잦았는데, 그분들이 인사하는 방식이 독특했다. “안녕하세요, 도 선생님! 나는 오늘 오전에 00에서 회의를 했고, 00레스토랑에서 000 씨를 만나 점심을 먹은 다음에 000으로 가는 길이에요. 당신은 어디로 가세요?” 하는 식으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한 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분들 대부분이 그렇게 인사를 하셨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먼저 유학생활을 하며 큰 관계가 없는 분들이 그렇게 말을 거는 경우가 드물었고, 그분들 대부분은 식사나 차 모임에서 한두 번 만났을 뿐인 데다 독일 카리타스협회 고위직에 있는 매우 바쁜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호기심이 생겨 남영자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다. 남 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며 “사회복지 공부를 하면서 학교에서부터 훈련이 되어서 그래요.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자기 자신부터 열어 보이고 대화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겁니다.”라고 하셨다. 습관이 내가 일하는 방식을 만들고, 나 자신을 이루어간다. 그렇다면 ‘가톨릭교회의 인간과 사회에 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사랑실천(Caritas)을 배우고 있는 나는 어떤 인사습관을 가지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수년 전 내가 일하는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직원교육을 위해 동료들의 실천경험에서 유용했던 아이디어를 공모해 서로 가르치도록 한 일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동료사회복지사가 “상담, 프로그램 진행시 나만의 노하우”라는 제목으로 교육을 한 적이 있다. 그 교육의 중심내용이 어떻게 인사를 하면 상대방과 성공적인 상담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 그 선생님을 추천한 동료는 “우리 노인복지관에서 어르신들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대개 그 선생님만 찾습니다. 그 선생님이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하고나면 문제가 풀려요.”라고 했다. 그런 체험들 때문인지 요즘 사회복지 동료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복지요결』이라는 책은 “인사만 잘해도 사회사업은 반을 넘습니다.(중략) 인사가 사회사업 열쇠입니다.”라고까지 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의 사랑실천과 사회복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들이 가진 것과 필요한 것 사이에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맺게 하는 일이다. 모든 관계는 첫 만남에서 시작되고, 만남은 인사에서 시작된다. 인사는 하느님께서 상대방에게 선물하신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드러내 보여주기에 정성이 담긴 인사를 받는 사람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서로 인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 사람들은 서로에게 낯익은 사람, 이웃사람이 된다. 그 인사가 자신을 먼저 열고 나누는 것이라면 서로를 향한 호의가 생겨난다. 호의와 관심은 상대방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하고, 그의 기쁨과 슬픔이 나와 상관있는 일이 되도록 만든다. 우리가 상대방과 함께 아파할 수 있게 해준다. 나아가 이웃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나 혼자서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던 여러 사람들이 함께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서로를 향한 책임이 마치 짐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사는 방식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나를 먼저 열고 다가가는 인사가 나에게 습관이 된다면 나는 적어도 가톨릭사회복지를 시작은 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런 인사가 우리 사회에서 당연한 문화가 된다면 우리가 가톨릭사회복지를 해온 작은 열매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따뜻하고 열린 마음으로 인사해줌으로써 이 깨달음을 선물한 모든 분들은 우리의 스승이다. 그분들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날이 오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