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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인 가족찾기 프로젝트
프랑스 입양인 클로틸드 트롱(한국이름: 이연미)


글 김 데레사 수녀 |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수녀원이 시작된 1915년 이래 백백합보육원을 거쳐 입양된 수많은 해외입양인들이 성장하여 자신의 친가족을 찾기 위해 모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수차례 해외입양인들이 감동적인 친가족상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해주신 〈빛〉 잡지 형제자매님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아직도 상봉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1981년 11월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 입양되어 마자메 라트르드 타시니에서 살고 있는 클로틸드 트롱 씨가 친부모님을 꼭 찾고 싶다며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백백합보육원 해외입양인 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백백합보육원에 남아 있는 문서에 의하면 클로틸드 씨는 1981년 5월 11일 대구시 봉덕동 879번지에서 포대기에 쌓인 채 한 주민에게 발견되어 봉덕파출소를 통해 백백합보육원에 맡겨졌다. 아기의 포대기 속에는 ‘생년월일 1981년 5월 11일’이라고 적힌 쪽지가 들어있었다. 그야말로 갓 태어난 상태로 버려졌던 것이다.

백백합보육원에서는 아기에게 이연미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기는 당시 신생아들이 있었던 홍방과 청방에서 5개월여 보살핌을 받다가 같은 해 11월 입양기관인 홀트를 통해 프랑스의 한 가정에 입양되었다. 양부모인 트롱 씨 부부는 클로틸드 씨를 키우는 데 사랑과 정성을 다했고, 한국에서 남자 아기를 한 명 더 입양해서 훌륭하게 자라도록 도와주었다.

클로틸드 씨는 “양부모님은 다정하고 사려 깊으며,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저를 입양한 후 몇 년 뒤 한국에서 입양한 남동생과 함께 저를 무척 아껴주시며 저희에게 늘 큰 지지를 해주시던 분들입니다. 저는 결혼해서 남편과의 사이에 9살 된 딸과 7살 된 아들이 있습니다. 다른 입양아들처럼 저도 살아오면서 정체성 문제와 보통 성장기 젊은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부모님과 남동생의 도움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클로틸드 씨가 36년 전 어머니와 헤어져야만 했던 장소를 경찰관과 함께 주민센터 직원이 안내해 주는 대로 찾아가 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옛 주소지와 주변지역은 10여 년 전 재개발되어 봉덕동 879번지 동네는 사라졌고 신축된 아파트 단지옆 도로변을 따라서 각종 대규모 건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렇지만 클로틸드 씨는 어딘가에 꼭 살아계실 것만 같다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어머니, 저는 프랑스로 입양된 후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 깊은 데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 저의 친어머니와 한국의 가족들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를 포기하셔야만 했던 어머니를 결코 원망하지 않습니다. 저를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보고 싶은 어머니,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기를 원합니다. 어느 곳에 계시든지 어머니께서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클로틸드 씨에 대해 아시는 분은 아래 연락처로 연락해주시고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주변에 널리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백백합보육원 입양인 지원 T. 053-659-3333

김 데레사 수녀 : spctk@hanmail.net